title: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와 금융 버블"
description: "카를로타 페레스 교수의 논문(Finance and technical change: A long-term view)을 읽고 인사이트를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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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Carlota Perez 교수의 금융과 기술 관계의 연구인 'Finance and technical change: A long-term view' 논문에서는 기술과 금융 변화의 역사적 패턴을 이해하는 포괄적인 프레임워크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크립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명확한 예측은 하지 않죠. 그래도, 금융이 어떻게 기술의 랜드스케이프를 형성하는 지에 대한 역할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논문입니다.

아래는 이 논문을 읽고 GameFi 팀의 로운 님이 2018년 8월에 쓴 글입니다. 로운님은 엔지니어링 배경을 가진 크립토 네이티브 프로덕트 매니저이며, 기술과 업계의 트렌드에 대해 깊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로운님과의 대화는 어려운 주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시고, 깊이 있습니다.

플라네타리움에서 로운님은 탈중앙화 된 게임들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고 자생적인 생태계를 조성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게임파이 프로덕트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와 금융 버블

지난 2017년 말부터 올해 (2018년) 초까지, 크립토는 광기의 현장이었다. 당시엔 잘 몰랐는데 지나고보니 이런게 버블이구나 싶더라. 난생 처음 버블을 겪고나니 버블이 왜 생기는지 궁금해졌다. 자료를 찾아보던 중 프레드 윌슨이 오래전부터 카를로타 페레스(Carlota Perez) 교수의 이론으로 크립토 업계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을 발견했다. 버블을 다룬 많은 책이 금융 투기와 그 심리에만 주목하는 데 반해, 페레스의 이론은 그동안의 금융 버블을 기술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페레스의 여러 논문 중 2004년에 나온 “Finance and technical change: A long-term view“을 읽어보았고,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2002년에 발간된 책 “기술혁명과 금융자본”이 그 내용을 가장 자세히 담고 있다고 하는데, 저자 본인이 2004년 논문이 책 내용을 압축한 버전이라고 하기에 이 논문을 읽는 것으로 갈음하였다.

페레스의 이론은 흔히 이 그래프 하나로 설명하곤 한다.

https://lounlee.cafe24.com/wp-content/uploads/2018/08/perez_framework.png

페레스는 기술 혁명을 단순히 기술의 등장과 소멸로 볼 것이 아니라 기술이 끼치는 경제적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술로 인해 생기는 새로운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구조 전체에 영향을 끼치며 사회 전반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기술 혁명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발생하게 되는데, 각각의 기술경제학적 패러다임은 약 반세기 동안 유지된다고 한다. 페레스는 그 이유로, 새로운 기술이 사회의 표준이 되려면 기존 패러다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새롭게 등장하는 여러 기술 중에도 현재의 패러다임과 맞는(compatible) 기술들은 쉽게 보급이 되지만(예: 전기가 보급된 이후 가전제품의 보급은 쉽게 진행되었음), 기존 패러다임과 잘 맞지 않는 기술은 적합한 용도를 찾기 전까지 매우 한정적인 분야에만 사용되게 된다(예: 증기 기관을 운송용 동력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리기 전까지 증기 기관은 광산에서 물을 빨아내는 데에만 사용되었음).

그렇게 변두리에서 한정적으로 사용되던 기술들은 기존 패러다임의 수익 창출 능력이 포화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이때 상대적으로 이동이 용이한 재무적 자본(financial capital) 중 벤처 캐피탈 같은 대담한 집단이 그동안 외면받고 있던 기술에 자본을 공급하게 되고, 새로운 자본을 얻게 된 기술은 점차 꽃을 피우게 된다. 그렇게 자본을 확보한 기술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낮은 리스크로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핵심 기술 없이 흉내만 내며 비슷한 사업을 벌이게 된다. 결국 실제 가치 창출 능력과 상관없는 장부상의 가치(주가)만 부풀어 나면서 버블이 형성되게 되고, 시간이 흘러 버블이 무너지면서 “도입 단계(installation period)”는 끝나게 된다.

페레스는 이 금융 버블을 거치며 기술 혁명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 위한 신뢰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버블로 인해 높아진 사회적 관심은 결국 규제 변화로 이어지고, 기존의 패러다임에 익숙한 생산 자본(production capital)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심을 갖게 되며 실제적인 보급의 기틀이 갖춰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재무적 자본에서 생산 자본으로 경제의 중심이 옮겨가게 되고, 거대 기업들로 구성된 생산 자본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여러 방향으로 패러다임에 맞는 기술 혁신을 이룩하며, 점차 사회 전체가 해당 기술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를 “전개 단계(deployment period)”라고 부르며, 점차 패러다임의 성장 가능성이 포화 되면 전개 단계도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어딘가에서는 또다른 기술 패러다임이 등장할 준비를 하게 된다.